산림청 기자단 권지은
올 여름 휴가, 저는 예천, 안동, 봉화, 영양 일대를 둘러보는 여행으로 다녀왔어요.
지역 경계를 넘어서부터 보여지는... 경북 영양의 풍경은, 뾰족뾰족한 침
엽수림 사이로 산바탈을 개간한 땅에 채소 농사, 특히 고추 농사를 많이 짓는 평범한 산골 마을 풍경들이었는데요.
끊임없이 이어지는 왕복 2차로를 무심히 달리던 중에 만난 영양 주실마을은 첫인상부터 평범한 산골마을과는 확연히 다른 특별함이 있었습니다. 소박한 시골 분위기보다는 세련되게 잘 단장한, 어쩌면 조금은 '의도적으로 잘 가꾼' 분위기가 있었다고나 할까요.
시골 동네 골목길에 이정표가 있는 것부터 남다른 풍경이 아닌까요. 하지만 붉은 시멘트 보도는 좀 아닌 듯... 그냥 흙길 정취가 자연스러울 것 같은데 말입니다. 무심한 듯 자란 달맞이꽃처럼, 흙담 아래 꽃 진 자리에 영글고 있는 접시꽃 씨앗처럼이요...
호은종택 (지훈태실)
한양조씨 종택이자, 청록파 시인 조지훈의 생가입니다. 안내판에 써 있는 내용을 좀 옮겨보자면, "이 곳은 청록파 세 분 시인 중에 지훈 조동탁(1920~1968) 선생이 태어나 성장하여 일제 암흑시대 '문장'지에 시 <고종의상>, <승무>, <봉황수>로 등단, 전아한 회고 취미의 언어로 민족적 정서, 전통에의 향수, 불교적 선(禪) 감각을 조탁된 서정에 실어 형상화한 한편, 티 없는 지사 기질로 높은 예술혼을 발휘케 한 유서 깊은 생가이다."
조지훈 문학관
높은 현대식 건물이 아니라 낮은 기와집으로 펼쳐 지은 것이 참 멋있었는데요.
좀 화려한 듯 하면서도 주실마을 전체 풍경 속에서 튀지도 않는 건물이었습니다..
내부 사진촬영 불가 표시가 없어서... 관람하면서 셔터 끄고 사진 몇장 촬영했어요.
박물관이나 무슨 기념관에 들어가면 괜히 사진촬영에 소극적이 되더라구요.
'청록파' 시인 세분입니다.
개성이 확연히 다른데 늘 항상 셋이 엮어 언급되는 거, 본인들은 좋았을까요 싫었을까요..
어쨌든 늘 항상 뭉쳐 다니시긴 했나 봅니다.
청록파라는 명칭이 유래한, 그 유명한 청록파 시인들의 시집입니다.
조지훈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들은... 서정시인, 탐미주의 뭐 이런 것들인지라...
어쨌든 그가 일제에 저항해 절필도 하고 자유당 독재에 맞서 저항 문학도 했다는 건 의외였어요.
그런데 집안 내력 자체가 뼈 속까지 지조있는 선비 유전자더라구요...
조지훈이 종군문인으로 활동했다는 것도 처음 알게 된 사실입니다.
다부원에서
-조지훈-
한 달 농성(籠城) 끝에 나와 보는 다부원(多富院)은
얇은 가을 구름이 산마루에 뿌려져 있다
피아(彼我) 공방(功防)의 포화(砲火)가 한 달을 내리 울부짖던 곳
아아 다부원(多富院)은 이렇게도 대구(大邱)서 가까운 자리에 있었고나
조그만 마을 하나를 자유(自由)의 국토(國土) 안에 살리기 위해서는
한해살이 푸나무도 온전히
제 목숨을 다 마치지 못했거니
사람들아 묻지를 말아라
이 황폐(荒廢)한 풍경(風景)이
무엇 때문의 희생(犧牲)인가를......
고개 들어 하늘에 외치던 그 자세(姿勢)대로
머리만 남아 있는 군마(軍馬)의 시체(屍體)
스스로의 뉘우침에 흐느껴 우는 듯
길 옆에 쓰러진 괴뢰군(傀儡軍) 전사(戰士)
일찍이 한 하늘 아래 목숨 받아
움직이던 생령(生靈)들이 이제
싸늘한 가을 바람에 오히려
간 고등어 냄새로 썩고 있는 다부원(多富院)
진실로 운명(運命)의 말미암음이 없고
그것을 또한 믿을 수가 없다면
이 가련한 주검에는 무슨 안식(安息)이 있느냐
살아서 다시 보는 다부원(多富院)은
죽은 자(者)도 산 자(者)도 다 함께
안주(安住)의 집이 없고 바람만 분다.
6. 25 당시 경북 칠곡군 가산면 다부리 전투의 참상을 직접 보고 경험한 것을
시인의 감회로 쓴 시입니다.
시인의 아내는 이 정도 품격이 있어야 하나 봐요.
늘빛 김난희 여사의 글·그림으로 읽는 조지훈의 시, '도라지꽃' 입니다.
이건 또 어떤가요? 조지훈 육성 시 낭송 인데요. 조지훈의 시, '코스모스'와 '낙화'를 그의 목소리로 직접 들려줍니다.
마을 이름이 원래 '주곡리'인데 왜 '주실(舟實)마을'로 불리는지는모르겠습니다
어쨌든 주실 마을 전체 형상이 배 모양이라고는 합니다.
이곳 주실마을 시인의 숲은 '2008 제9회 아름다운 숲 전국대회' 에서 '아름다운 생명상(대상)'을 받은 숲입니다. 당시 선정 이유가 '공존'이었다고 하는데요. 아마도 사람과 환경, 자연과 예술의 공존이 키워드가 아니었을까 싶네요.
숲 한 가운데 이렇게 도로까지 가로지르고 있는데 상까지 받은 숲이라니...햇빛도 비치지 않을 만큼 깜깜하게 울창한 숲을 기대했다면 실망할 것입니다. 규모도 그다지 크지 않고요. 하지만 아름드리 나무들 사이로 쏟아지는 햇빛과 그 햇빛에 반짝이는 초록빛이 정말 시원한 숲이랍니다.
게다가... 숲 속에는 이렇게 시가 있습니다. 요건 조지훈의 형 세림의 시비..
요게 조지훈의 시비인데요 그의 문하생들이 1982년에 세운 시비라고 한다.
국내 어디를 여행한다 해도 이런 분위기 속에서 시를 음미할 수 있는 곳은 없을 거 같아요.
빛을 찾아 가는 길
-조지훈-
사슴이랑 이리 함께 산길을 가며
바위 틈에 어리우는 물을 마시면
살아 있는 즐거움이 저 언덕에서
아련히 풀피리도 들려오누나.
해바라기 닮아 가는 내 눈동자는
자운(紫雲) 피어나는 청동의 향로
동해 동녘 바다에 해 떠오는 아침에
북바치는 서름(설움)을 하소하리라.
돌뿌리 가시밭에 다친 발길이
아물어 꽃잎에 스치는 날은
푸나무에 열리는 과일을 따며
춤과 노래도 가꾸어 보자.
빛을 찾아 가는 길의 나의 노래는
슬픈 구름 걷어가는 바람이 되라.
주실마을 뒤쪽으로는 '지훈 詩 공원'이 있는데요.
왼쪽으로 흐르는 개울물 소리를 들으며 나무 데크 산책로를 따라 걸어 올라가면
오른쪽으로는 이렇게 조지훈의 시가 돌판에 새겨져 있습니다.
주변 환경 속에 시가 자연스럽게 어우러져 있는 풍경… 정말 아름답죠..
시 공원 정상에는 조지훈 동상과 그의 대표 시들이 동상과 함께 있었는데요.
한 여름 햇살이 조금 따가워서 오래 머물진 못했지만 잘 관리되고 있는 깨끗한 공원이었습니다.
주실마을은,
주변 마을들 중에서 유일하게 일제시대 창씨개명에 저항했던 마을이라고 합니다. 한성 조씨 집안의 선비 정신이 살아있는 마을이며 옛 것과 새 것, 자연과 인간, 문학과 숲이 공존하는 아름다운 마을, 아름다운 숲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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