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영월 와석리 어둔마을
경치가 빼어나며 그야말로 오지이다. 이곳의 남쪽 산록은 선달산(1,236m)과 어래산(1,063m)으로 이어지는 소백산맥의 심산유곡으로 대부분 무인지경의 골짜기이다. 김삿갓의 방랑벽을 잠재운 곳으로 그의 거처와 무덤이 있다.
와석리는 어래산과 마대산 사이를 흐르는 남대천의 중,하류에 자리를 잡고 있다. 이것이 발전을 하지 못하고 오지로 남겨져 있는 것은 행정의 사각지대이기 때문, 찻길에서 20리를 걸어 들어가야 하는 열악한 교통사정이 겹쳐 더욱 사람들의 발길이 뜸하다.
이곳의 특색은 한마디로 절경이라는 점. 산과 물이 어우러져 한 폭의 수채화를 그려내고 있다. 산굽이를 돌 때마다 새롭게 펼쳐지는 바위 병풍과 반석으로 이어지는 계류는 그야말로 별천지여서 "무릉계"라는 찬사를 떠올리게 한다.
무릉계라고 극찬한 이는 김삿갓. 희대의 방랑시인 김삿갓은 영월의 산수미에 반해 동강의 삼옥리와 영월의 와석리의 안쪽 골짜기인 어둔리에서 수 년간 정착하며 살았다고 한다. 어둔리 일대에는 일년 내내 찾아오는 사람이 거의 없어 오지로 버려졌었는데 그 절경이 최근에 알려지면서 외지 사람들이 찾아들었다.
오지라고 이름을 붙일 수 있는 곳은 들목인 들모랑이에서 골 어귀를 들어서면서 시작된다. 최근에 영월군에서 김삿갓 유적지를 정비한다고 진입로를 포장해놨다. 골짜기가 넓어지면서 민가가 나온다. 이곳의 이름은 싸리골, 이런 산골에서 논을 만나기가 쉽지 않은데 이 마을에는 논이 있다.
이 마을에서 반듯이 먹어봐야 하는 것이 있다. 물 맛이 그야말로 일품이다. 싸리골에서 좀더 계곡으로 들어가면 곡골, 싸리골에서 곡골 일대와 노루목에 이르는 10리 구간은 어디에 내놓아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경치가 뛰어나다.
김삿갓의 무덤이 있는 노루목까지는 들목 인 들모랑이 부터 20리 거리인 8km떨어져 있다. 그리고 그가 살던 집터는 집터가 있는 어둔리는 노루목에서 5리 정도를 마대산 동쪽 골짜기로 거슬러 올라 가야 한다. 노루목에는 "김병연지묘"라는 작은 묘가 있다.
노루목에서 김삿갓이 살던 어둔리의 집터로 가다보면 성황당이 있는 갈림길이 나온다. 왼쪽 길로 접어들면 김삿갓이 살던 집터로 가는 길인데 초여름에 찾아가면 온갖 야생화가 버려진 묵밭에 피어있다.
▶ 찾아 가는길
어둔 마을은 영월읍에서 30km 떨어진 곳이지만 들모랑이 까지 관내버스가 다니므로 들모랑이 까지는 비교적 쉽게 갈 수 있다.
옥동 초등학교 주석분교 옆에 노루목상회를 기점으로 남대천 계곡을 거슬러 오르는데 입구에 김삿갓 조형물을 세워놓아 길손을 이정표 구실을 한다. 들목에서 와석리 노루목까지는 20리를 걸어야 하고 노루목에서 어둔 마을까지 2km를 더 걸어가야 한다.
최근에 영월군청에서 관광지로 개발을 해 진입로가 모두 포장이 되었고 노루목에서부터 김삿갓이 살던 집터까지는 옛길 그대로다.
2. 정선군 " 안도전 마을"
남한강과 낙동강의 분수령인 피재를 넘어 청옥과 두타산 자락의 하장을 넘으면 임계를 만나게 된다. 이 길은 정선아리랑의 '물나들이 굴굴대는' 물거품을 볼 수 있다. 돌담과 양철 지붕을 얹은 키 낮은 집들이 있다.
안도전 마을은 골골이 쏟아진 물이 어우러지고 골지천과 임계천이 만나 정선의 조양강으로 흘러 남한강의 물 허리를 이루는 곳에 위치한다. 이 물길을 거슬러 올라가야 안도전 마을을 만날 수 있다.
안도전 마을로 가는 길은 청옥산 자락이 깊고 푸르게 드리워져 있어 풍광을 감상하기엔 더 없이 좋다. 흙먼지 풀풀대는 황토길의 끝, 고적대 아래 마을 하나가 웅크리고 있다. 고적대와 중봉에서 내려오는 물길을 쳐 올라 모롱이를 휘돌 때마다 냇가 양편으로 돌담을 두르고 양철지붕을 얹은 키 낮은 집들이 드문드문 햇빛을 이고 있는 마을은 그야말로 적막강산이다.
이곳에서 거주하는 마을 사람들은 탁왈수 씨를 비롯하여 몇 집 되지 않는다. 구부렁 골로 몇 걸음 떼면 오래전에 문을 닫은 도전 초등학교 내도전 분실이 보인다.
교실 한칸이 전부인 이곳은 화전민들의 자녀들이 다녔던 학교이다. 지금은 내 도전의 농기구 창고로 쓰이고 있지만 산골 아이들의 꿈을 키워주던 곳이었으리라. 학교는 아이들의 웃음이 왁자하게 터졌을 당시를
기억이라도 해내려는 듯이 당시의 물건들을 고스란히 간직한 채 덩그러니 빈 공간을 지켜내고 있다. 아름들이 황철나무가 운동장 곳곳에 우뚝 솟아 지나는 길손에게 쉴 공간을 만들어 준다.
버드내 쪽으로 발걸음을 옮겨 가마소와 구유소를 지나면 버드내를 적시고 온 물과 고적대에서 장아리를 지난 물길이 만나 작은 아우라지를 또 하나 만든다. 해 질녘 아우라지에서 발을 적시고 노을을 바라보는 기분은 오지에 온 여행자의 심연에 젖게 한다.
물이 흐르면서 내는 소리가 어떤 음악보다 아름답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 찾아가는 길
정선에서 동해로 이어지는 42번 국도를 따라가면 임계를 지나 7km를 가면 내도전 가는 작은 이정표가 보인다. 주의하지 않으면 그냥 지나치기 쉬운데 (식당) 간판이 이정표 구실을 한다. 내도전에는 차가 들어가지 않는다. 큰길에서 10리를 걸어 들어가야 하는데 오염이 안된 내를 따라 들어가면 맨 끝에 내도전 마을이 자리잡고있다.
3. 내린천 변의 "개인동"
내린천은 홍천군 내면 원당리에서 인제군 상남면 하남리로 흘러내리는 약 20km 길이의 전형적인 사행천이다. 개인동과 삶둔은 이 내린천의 가운데 지점에 위치한다. 그래서 이곳을 찾는 일은 그리 간단하지 않다. 밭떼기를 일구는 몇몇 농군들이 오지의 삶을 지키고 있다.
하루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것이 산골의 마을들이다. 도로가 뚫리고 개량한 집들이 들어서면서 산촌도 급격히 변하고 있다. 개인동이 바로 그런 곳이다. 주변 경치가 절경이다 보니 도로가 포장이 되고 별장 같은 집들이 하나둘씩 곳곳에 들어서고 있다. 이제는 오지마을의 면모를 많이 잃어 버렸지만 그래도 이 곳을 가려면 하루를 꼬박 잡아야 한다.
강원 지방은 인제, 홍천에 삼재 불입처로서 "삼둔 5가리"가 있다는 내용의 정감록이 널리 유포되었다. 삶둔, 월둔, 달둔의 3둔과 명지가리(명지거리), 젖가리, 아침가리(조경동), 영가리, 명가리(명개리)의 5가리가 그곳이다.
이런 사회적 배경을 깔고 있는 이곳은 오지의 모든 것을 갖추고 있는 셈이다. 개인 약수터와 대개인동을 가는 길목은 무인지경의 심산유곡이다. 파리목으로 불리우는 고갯마루를 넘으면 대개인동이 보인다.
계곡을 거슬러 1시간 가량 오르면 개인약수터가 있다. 삼나무와 전나무가 빽빽하게 우거진 곳에 탄산수 주성분의 개인약수가 솟아나며 개울의 바닥 돌을 붉게 물들이고 있다. 솟아나는 약수 만큼이나 정갈하고 정성스런 수십 개의 돌무더기가 서있는 약수터의 풍경은 종교적인 느낌을 준다. 산신령에게 약수의 효험을 비는 제단이 마련되어 있다.
대개인동을 떠나 소개인동으로 가려면 내린천을 앞두고 산등성이를 올라야 한다. 몹시 가파르고 험한 산허리의 오솔길을 아슬아슬하게 가로지른다. 이렇게 두메 산골에 정말 사람들이 살고 있을까 ? 하는 의문이 고개를 들 때 즈음 산 속에 완전히 갇혀있는 소개인동에 이르게 된다.
소개인동은 "속에 있는 동네" 의미의 이름처럼 산간 분지의 숨은 마을이다. 이곳은 안식교도들이 살고 있다. 이들은 미산리 빈지동 안식교의 독실한 교인들로 토요일을 지키며 금욕생활을 해오고 있다. 옥수수와 감자를 주로 가꾸는데 농경지의 넓이는 약3만평, 토종벌을 쳐서 생계유지에 보탠다.
▶ 찾아 가는길
내린천은 인제군 상남쪽에서 거슬러 올라도 좋고 원당리로 들어가서 냇물을 따라 내려가도 좋다. 상남으로 들어가는 경우 미산리 까지는 하루 한 차례밖에 다니지 않는 불편함을 감수해야 한다. 길 찾기가 어려운 점은 없다. 대개 계곡이나 내린천 변을 따라 가면 마을을 만나게 된다.
4. 정선 발구덕
발구덕 마을은 강원도 정선군 남면 무릉리 민둥산 기슭에 있다. 이곳 마을은 함몰해 가는 분지 속의 산촌인데 한국의 이색지대로 세간의 관심을 계속 모으고 있다. 동네 곳곳에 구멍이 자꾸 생겨나 한국의 이색지대로 관심을 모으고 있다.
증산역에서 1km 정도 걸어 올라가면 민둥산에 다다르게 된다. 이 마을이 오지로 남아 있는 것은 동네 곳곳에 구멍이 생겨 동네가 가라앉을 것이라는 위기감 때문에 동네 사람들이 하나 둘씩 이곳을 뜨게되어 폐허로 버려지는 집이 생기면서 개발이 전혀 되지 않기 때문이다. 동굴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라면 이곳을 여행하면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마을에 커다란 구멍이 여덟개 있다고 하여 이름이 붙여진 곳이다. 그 중에 가장 큰 것이 윗발구덕 마을이 자리잡은 "윗 구뎅이" 남동쪽 아래의 아래 발구덕 마을이 자리한 "아랫 구덩이" 동쪽 옆의 "큰 솔밭 구덩이"와 "능정 구덩이" 민둥산 남쪽 시루봉 근처의 "글등구뎅이" 그리고 민둥산 주변의 3개까지 합쳐 구덩이가 모두 여덟 개다. 그밖에도 자잘한 구덩이는 수없이 많다. 또한 없던 구덩이가 생기기도 한다.
때문에 밭을 갈던 소가 툭하면 발이 구덩이에 빠지기도 한다. 그래서 25년 전 일본학자와 공동으로 이 발구덕 마을 주변지형과 동굴을 조사한 바 있다. 조사자에 따르면 이 구덩이들은 돌리네(Doline)에 해당되며 발구덕마을은 이들 돌리네가 밀집한 카르스트 지형의 전형을 보이고 있다고 밝혔다. 돌리네란 석회암 토지의 표면에 볼 수 있는 사발 모양의 움푹 패인 땅이다.
이런 돌리네가 많아 이 마을이 점차 밑으로 꺼지게 되는 것이다. 아래가 커다란 동굴로서 지표면과 통한 굴을 통해 흙이 자꾸 빠져나가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이런 추정은 마을 사람들의 경험으로 뒷받침 되고 있다.
쇠구뎅이는 윗 발구덕 마을의 것보다 한결 커다란 마치 포크레인으로 파낸 듯한 깊이 5m, 길이 30m의 함몰지다. 이 구덩이는 매년 장마 때마다 물이 가득 차는데 어느 순간 한 가운데에 공기가 5~6m 수면위로 치솟은 다음 순식간에 빠진다. 이 물은 초등학교 뒤 동굴로 흙탕물이 되어 흘러나온다.
민둥산 주변에는 동굴이 여러개 있다. 민둥산 정상부에 깊이 71m의 삿갓굴 과 깊이 18m의 수직굴 이 있는 것을 비롯 민둥산 북쪽 지억산 의 남쪽 골짜기에는 기차도 드나들 수 있을 많큼 크다고 해서 주민들이 이름을 붙여놓은 기차굴 , 물이 많이 나온다는 뜻의 물나는굴, 증산국교 뒤 시루봉의 굴동굴 등 일일이 셀 수 없는 굴들이 많다. 동굴탐험을 전문적으로 하는 이들에 따르면 이 곳은 이 굴들이 모두 하나로 통해 동양 최대의 석회동굴을 이루고 있을 것이라고 추측한다.
발구덕 마을 아래 땅속에 미로처럼 얽혀 있을 동굴은 아직 전모는 드러나지 않았으나 종유석이며 석순 등 동굴의 풍치가 일급인 것으로 밟혀졌다.
▶ 교통
청량리역에서 태백선 열차를 타고 증산역에 하차. 증산역에서 도보로 1km를 가면 민둥산이 나온다.
5. 명주 한터 마을
한터는 이름 그대로 넓은 땅이다. 그러나 그 들목은 태백산맥의 장엄한 산세가 남한강의 최상류인 송천과 합작으로 꽉 막아버려 30~40리는 걸어 들어가야 한다. 이 한터에는 우람한 산세에 갇힌 오지 삶의 폐쇄성과 근세사 이래 망명적인 생존이 이룩한 깊은 한을 느낄 수 있다. 오대산 송천 변에 위치한 수달래가 흐드러지게 피는 곳.
이 땅에 백두대간 만한 골격을 지닌 산맥이 없는 만큼 그 등허리를 파고 오른 송천이라 그 깊이를 따를 강이 없다. 이 송천가 변에 위치한 마을들은 오지의 신세를 면하지 못하고 있다.
동초밭, 가락동, 소란, 한터, 자오동, 석동거리, 사이수터, 재도리, 다리새, 새터, 배나드리, 등이 송천 변의 오지인데 그중 한터 마을은 송천 의 중류에 있다. 서울에서 당일로 한터에 가려면 밤길을 걸어야 한다. 증산까지는 급행열차를 이용했지만 증산에서는 완행열차로 갈아타야 구절리에 닿게된다.
구절리는 기차가 들어가는 최고의 산간 오지로 알려져 있다. 종량동을 지나면 대기리에 도착한다. 대기리는 행정구역상 명주군 왕산면에 속하는데 한터를 한자로 표시한 이름이다. 한터에는 대기초등학교 한터 분교가 있다. 이 학교 아래쪽에는 10가구 미만의 가구가 있다.
이 마을에 사람이 둥지를 튼 것은 줄잡아 400년은 된다. 병자호란을 피해 이곳에 들어와 지금껏 뿌리를 내리고 있다. 정감록에 의하면 오덕지기라는 말이 나온다. 황정덕이, 황철덕이, 장두덕이, 구비덕이, 안반덕이, 등인데 이것은 발왕산과 조고봉, 그리고 구절리의 고비덕봉이 감싸고 있는 골짜기들의 지명이다. 그 오덕지기의 중심이 한터다.
동네에는 이 마을의 역사를 말해주듯이 수 백년 묵은 성황당이 있다. 서낭당에는 요즘도 음력 9월9일에 제사를 치르는데 전 주민이 정성스레 참여한다. 1960년대에 들어서면서부터 마을은 빈집이 늘어갔다. 가난을 면하기 위해 송천을 떠나 도회지로 간 것이다.
한터에서 배나드리까지 30리 구간에는 사이수터, 재도리, 다리재 등의 서너 마을에 한두 집이 남아 있는 것으로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배나드리라는 지명은 그곳서 출발하는 뗏목에서 유래된다. 일재때 뗏목으로 송천의 소나무를 뗏목에 실어 나르던 시절에 붙여진 것이다.
송천변의 수달래는 이곳 오지에 사는 사람들의 마음을 달래주는 상징적인 존재이다. 이 마을을 떠나고 싶어도 수달래를 볼 생각에 떠나지 못한다고 말할 정도로 마을 사람들의 수달래에 대한 사랑은 대단하다. 수달래가 만개하면 송천은 그 꽃이 물에 비쳐 빨갛게 타오른다. 굽이굽이 피어난 수달래를 보면 오지의 서러움과 한이 절로 풀린다고 현지인 들은 말한다.
수달래가 피는 시기는 5월 초순경, 이 장관을 구경하고 싶은 사람은 이 시기에 이곳을 방문하면 좋을 듯하다.
▶ 찾아가는 길
하류인 구절리에서 상류의 수하리까는 외딴집이 드문드문 나타나는 100리 계곡이 계속 이어진다. 구절리 에서 돌거리 까지는 한터 주민들이 10년 간 땀흘려 만든 도로가 있어 차량을 그곳까지 가지고 갈 수 있다. 걸어서 갈 경우 오르막이나 내리막도 없는 길이어서 걷기에는 무척 편하다.
6. 삼척군 하장면 "한소리"
아직도 물레방아가 돌아가는 마을이 있을까. 눈요기감으로 돌아가는 도시의 물레방아가 아닌 진짜 물레방아 말이다. 곡식도 찧어먹고 고추도 빻아먹는 그런 물레방아가 있는 마을이 바로 정선군 동면 백전리에 있다. 곡식도 찧고 고추도 빻는 물레방아가 있는 마을.
정선에서 백전리행 버스를 타고 백전리에 내려 도보로 5km정도 걸어가면 만나게 되는 한소리 마을은 마을 초입에 물레방아가 돌아간다. 태백산의 정기를 가득 담은 물이 용솟음쳐 솟아나는 곳에 물레방아가 있다.
물레방아가 돌아가는 그곳을 용소 라고 하는데 용이 솟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직경 30cm의 소에서 검푸른 물이 시간당 10톤씩 솟아난다. 그 위에는 물이 전혀 없어 말라붙은 계곡이 있을 뿐, 이 물은 태백의 청정수로 물의 힘이 저절로 물레방아를 돌아가게 하는 것이다.
마을 사람들은 이 물레방아를 이용해 곡식을 찧어오고 있다. 마을로 들어가면 전형적인 산촌의 풍경을 대하게 된다. 지붕은 함석지붕으로 고쳤지만 집 몸체는 그곳 지방에서 많이 나는 나무를 이용해서 지은 너와집의 느낌을 그대로 전해준다.
산자락에 낮게 드리운 집들과 고랭지 채소가 자라고 있는 밭이 어우러져 한폭의 그림을 연상케 한다. 해발 800m의 고지의 경사면에 넓게 밭이 있다. 마을의 동쪽에는 해발 1,307m의 대덕산이 솟아있다.
대덕산 넘어 창죽동에는 한강의발원지인 검용소가 자리하고 있다. 마을은 굴과 구멍이 많은 동네이다. 물 나오는 굴도 5~6개나 된다. 소의 콧구녕처럼 생겼다는 쇠콧구녕굴, 장수가 나왔다는 장수굴, 굴골이라는 석회동굴등 동네가 구멍과 굴 투성이다. 용소 아래쪽에 세 개의 구멍이 나 있는데 숫용소라는 석회동굴에서 는 장마때만 물이 나오고 암용소 는 장마때 물이 넘친다.
▶ 찾아가는 길
정선에서 동면을 가는 버스를 타고 백전리에서 하차한다. 백전초등학교가 있는 곳에서부터 버스가 들어가지 않아 걸어 들어가야 한다. 한소리 쪽으로 길을 잡아들면 외길을 따라 5km 걸어들어 가면 한소리에 닿게 된다.
7. 영월 문산리
동강은 정선과 영월 사이의 고산지대를 뚫고 흐른다. 정선에서 서쪽으로 흘러 들어가는 이 강은 영월을 기준으로 삼아야 동강이 된다. 동강 변의 아름다움을 만끽 할 수 있는 오지마을.
동강은 풍부한 유량과 넓은 강폭을 이루고 있지만 주변의 산세나 지형으로 따지면 강이라고 부르기가 민망하다. 극심한 양안이 검은 절벽으로 이루어졌는가 하면 그 절벽 아래는 흐름이 멈춰진 듯 소 깊은 웅덩이가 버티고 있다. 절벽에서 보면 동강은 어느덧 없어지고 첩첩한 산줄기만 시야에 가득 잡힌다.
이 강변에 자리잡은 마을이나 이 지류를 거슬러 올라 주변 산 속 계곡으로 파고든 마을들이 여지껏 오지로 남아있는 것은 이렇듯 험한 주변의 산세 탓이다. 한적한 풍경의 동강변에 위치한 섭새 마을을 지나 동강을 건너 거운리를 들어서게 된다.
거운리 에서부터 동강을 버리고 서쪽 산록의 절운재를 넘어 문산 나루터로 내려서게 된다. 버스의 종점 문애리. 이곳에서 문산리로 가기 위해서는 나룻배를 타야한다. 동강 건너편에 있는 문산리 본동 나루터 쪽으로 소리를 질러 배를 보내달라고 외치면 배가 건너온다. 마을 사람들이 월급을 주고 월급을 주고 사공을 고용한 배라 마을 사람들에게는 배 삯을 받지 않지만 외부인에게는 약간의 배 삯을 받는다.
배를 건너 도착한 문산리. 오지마을의 전형적인 아름다움을 그대로 보여준다. 마을 앞을 길게 흐르는 동강, 그 뒤를 굽어보듯 치솟은 검은 절벽, 자갈밭과 하얀 모래톱 위로 넓게 펼쳐진 옥수수 밭과 고추밭, 그리고 마을마다 무슨 성루처럼 세운 황토빛의 건조막 등이 한데 어우러져 보기 좋은 한 폭의 그림을 그려내고 있다.
이 마을은 70년대 들어와 교육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도회지로 나가는 사람이 줄을 이어 20여 가구만 살고 있다. 절운재를 넘는 버스가 10년 전에 생겨 통행의 불편함을 해소하였고 그 길을 따라 전기도 들어와 전파매체도 보급되어 오지물을 어느 정도 벗었지만 비가 조금만 뿌리거나 눈이 오면 10리 밖 절운재 남쪽 장화동 까지만 버스가 다녀 문산리 주민들은 아직 오지 삶을 감내해야 한다.
절운재가 막히면 진탄 나루터나 달운으로 넘어가는 15리 산길을 걸어가야 평창군 미탄면 마하리로 들어오는 버스편으로 타지방 나들이를 할 수 있다. 교통의 불편으로 인해 오지의 신세를 면하지 못하고 있는 상태이다.
10년 전만 해도 주 농사가 담배였는데 고추농사로 작물을 바꿔 마을은 온통 고추밭이다.
동강 변의 경치를 보고 싶다면 강변을 따라 문희동까지 걸어 갈 수 있다.
▶ 찾아가는 길
영월 버스터미널에서 문애리행 버스를 타고 종점에서 하차, 길이 끝나고 나루터가 이어지는데 문애리에서 강 건너편에 있는 배를 보내달라고 하면 배가 오는데 항상 사람이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미리 연락을 해야한다.
8. 연곡 가마소
오대산 깊은 자락에 자리잡은 가마소 마을. 강릉시 연곡면 삼산리에 소속된 마을이다. 마을에 가마솦처럼 생긴 연못이 있어 가마소라는 이름이 붙여진 마을이다. 마을 복숭아 꽃, 살구꽃이 흐트러지게 피는 고향의 봄과 같은 마을.
강릉에서 동해바다를 끼고 주문진 쪽으로 30리를 가면 바다로 흘러 들어오면 큰 개울이 나온다. 오대산 노인봉 일대에서 동쪽으로 흘러들어 오는 연곡천 이다. 이 연곡천변에 위치한 이 마을을 가려면 어성전을 통해 가야 한다.
어성전 사거리에서 가마소 마을로 가는 푯말을 보고 외길을 따라 줄곧 가면 마을을 만나게 된다. 마을 가는 길목에는 우말과 가진동이 있고 머구재를 넘으면 가마소 마을이 오대산에 푹 싸여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고개 마루에서 내리막길을 휘돌아 가다보면 가마소 윗말이 보이기 시작한다. 마을 뒤에 솟은 두루봉. 그 기슭에서 발원하는 남대천은 길쭉한 가마소 마을을 적시고 양양을 지나 동해로 흐른다.
마을 어귀에는 삼삼초등학교 부연분교가 보인다. 빨간 지붕의 학교는 학생수가 다섯밖에 되지 않는다. 그러나 홍철수, 선민자 부부교사가 정성tm럽게 교정을 가꾸어 깔끔한 느낌을 준다. 학교의 담은 돌을 주워다가 쌓은 돌담이다. 담 주변에는 소나무가 줄지어 서있어 지나는 이에게 그늘을 만들어 준다.
학교에서 점심 한끼를 해먹고 다음 여행지로 가면 좋다. 윗말을 지나 5리쯤 걸으면 아랫마을. 예전에는 가마소 약수터라고 불렀는데 행적적인 지명이 부연동이 되면서 부연약수 라고 부르게 되었다.
이 약수는 첩첩 산중의 벼랑밑의 개울에서 물이 시작된다. 이 약수를 발견하게 된 것은 20여 년 전 마을 사람에 의해서다. 개울가에 있던 마을 사람이 토종벌들이 자꾸 한 지점에서만 물을 빨아들이는 것을 보게 되었고, 이상하게 생각이 되어 그 지점으로 가보니 탄산수인 약수 가 샘솟고 있었다 한다. 물맛이 짜릿하며 톡쏘는 맛이 난다. 탄산약수라 위장병에 좋고 소화를 도와주는 특성이 있다.
윗마을, 아랫마을 모두 합해 마을주민은 10여 가구, 봄이면 복숭아꽃, 살구꽃이 흐드러지게 피는 동요 '고향의 봄'과 같은 마을이다.
동네 안으로 맑은 내가 흐르는 이 주변은 야영을 하기에 더없이 좋다. 맑은 냇물에 발을 담그고 있으면 이 마을의 맑은 정기가 가슴 속 깊이 잦아든다.
▶ 찾아가는길
양양으로 일단 간 다음 어성전으로 들어가야 한다. 어성전 사거리에서 qnduds동으로 가는 길로 접어든다. 고갯 마을를 넘어 마을에 닿는 데 걸리는 시간은 도보로 3시간, 총 거리가 12Km이다.
9. 삼척 " 덕풍마을 "
삼척군 가곡면 풍곡리에 위치한 덕풍마을은 들목이 병의 목처럼 좁고 그 품속이 또한 병 내부처럼 넓어지는 특이한 계곡이 있는 마을이다.
삼척군 가곡면 풍곡리 에 위치한 덕풍마을은 들목이 병의 목처럼 좁고 그 품속이 또한 병 내부처럼 넓어지는 특이한 계곡이 있는 마을이다.
무인지경의 협곡이 20리나 뻗어 있고 마을 위쪽으로는 30리나 되는 원시계곡이 펼쳐지는 극지에 덕풍마을이 있다. 덕풍마을이 이곳에 자리 잡은 것은 5백년 전. 주민들은 형극의 땅으로 자신들의 고향을 원망하지만 이곳을 스쳐 지나가는 외지인들은 복숭아꽃이 만발하는 무릉도원으로 예찬하는 곳이다. 태백에서 호산을 경우하여 풍곡을 가면 된다. 풍곡을 가는 길목은 가고천을 줄곧 왼쪽으로 끼고 낡은 시외버스가 달린다.
삼척은 그 어떤 곳보다 계곡이 풍부하다. 가곡천변의 수려하고 깊은 계곡미를 감상하기에 부족함이 없는 경치가 줄을 잇는다. 차량통행이 드문 도로라 시원하게 달리게 된다. 골짜기가 풍부하다는 뜻인 풍곡, 심산유곡에 막힌 오지이다. 종점인 풍곡에서 덕풍마을을 가는길은 덕풍계곡을 그대로 거슬려 오르도록 나있다.
제법 차가 다닐수 있도록 길이 넓어지는 곳이기는 하지만 중간 중간에 계곡을 건너야 하고 계곡 양쪽이 절벽으로 맞물린 곳에서는 서너 사람이 간신히 지나갈 정도의 소로여서 경운기나 소형 지프등 차가 지나갈 수가 없다. 덕풍을 가고 싶다면 오로지 이십여리를 걷는 수밖에 없다.
마을을 가는 길목은 야생봉숭아와 살구나무가 유난히 많아 이들 나무가 꽃이 피는 5월은 무릉도원에 온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킬 정도로 아름다운 경치가 펼쳐지곤 한다. 능선과 골짜기 그리고 수림이 저마다 분수를 지켜서 조화를 이루어 이름답게 덕이 넘쳐 보인다. 50분 정도를 걸어 올라가는 동안 인 가를 하나도 만날 수 없다.
여기서 산굽이를 돌면 스님의 칩거지인 산호종사를 만나게 된다. 고개를 더 돌아나가면 덕풍마을이 나온다. 덕풍마을은 10여 가구의 주민이 살고 있다. 대부분이 3,4대씩 대물려 덕풍에 산 토박이다. 조선 중기때 피난지를 찾아서 선조들이 덕풍마을로 들어온 것은 5백년 전으로 추정된다.
이곳에는 아이들을 가르치는 학교가 없다. 분교를 세울 정도의 학생이 되질 않아 분교조차 세워지지 않았다. 초등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은 왕복 3시간를 걸어 학교에 다닌다.
마을 사람들은 전적으로 농사로 생계를 유지한다. 벼, 콩, 황옥등이 주 농사다. 전기가 들어오고 하여 문명의 세례를 받고는 있지만 도로사정이 풀리지 않아 여전히 오지의 운명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 찾아기는길
서울이나 영서지방에서 접근하는 경우에는 호산 쪽보다는 태백시를 경유하는 것이 편리하다. 태백시에 서 덕풍마을의 들목인 풍곡리까지는 하루 10회 직행버스가 다닌다. 풍곡에서 덕풍까지는 걷는 수밖에 없다. 20리 거리로 대략 2시간 정도 소요된다. 계곡으로 뚫린 외길이므로 특별히 길 찾기에 어려움은 없다.
계곡을 탐험하고 싶다면 덕풍에서 골짜기를 거슬러 올라가면 용소골 입구가 나온다. 원시성이 살아 있는 협곡이다. 용소골에서는 지나가기 힘든 낭떠러지와 폭포가 여러 차례 가로막게 되므로 철저한 준비를 하고 떠나야 한다.
10. 정선 단임마을
강원도 정선군에 속하는 이곳은 단풍나무의 숲이라는 뜻의 지명이다. 영동고속도로 진부 분기점으로 나와 정선을 잇는 405번 지방도로를 달리다 숙암에서 하차한다. 오대천을 건너 비포장 도로를 8km 정도 걸어 들어가면 단임마을이 나온다. 넓은 밭에 온통 하얀 메밀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다.
단임마을로 가는 길은 길이 매우 좁고 도로사정이 좋지 않아 버스가 다니지 못한다. 지프차나 승용차는 이 길을 다닐수 있다. 걸어서는 2시간 차로는 30분 정도. 계곡을 따라 걷다 보면 화전민이 살았다는 집터가 보인다. 지금은 모두 떠나 버려 흔적만 남아 있다.
길가의 외딴곳에는 토종벌을 치는 노부부의 집이 있다. 19살 때 시집을 와서 한평생을 이곳에서 보냈다는 할머니는 세월의 무상함을 일깨워준다. 토종벌을 쳐서 7남매를 출가시키고 이만큼이나 살게 되었다며 여전히 벌을 치느라고 바쁜 하루를 보내고 있다.
벌통을 만드는 나무는 10년 이상 된 피나무로 만드는데 이 나무를 택하는 이유는 자라면서 속이 비어 벌통으로 쓰기에 안성맞춤이다. 70cm 정도 의 크기로 잘라 속으리 완전히 파내어 양지바른 곳에 설치하여 가을에 꿀을 딴다고 한다.
산모퉁이를 몇 개 돌아 들어가면 폐교된 학교가 보인다. 숙암초등학교 단임분교인 것이다. 이 학교는 80년도에 폐교가 되어 거의 허물어져가고 있다. 창문은 하나도 없고 흙벽은 떨어져 구멍이 나 있다. 학생들이 뛰어 놀던 운동장은 온갖 잡풀이 무성하여 쓸쓸함만 더해줄 뿐이다. 학교의 모습만 보아도 이곳이 오지라는 것을 인정하게 된다.
산자락에 들어선 폐교 주위에는 5채의 집이 있는데 모두 떠나간 빈집들이다. 이곳의 유일한 주민인 이영광씨. 있는 이곳 마을에만 거주하는 것이 아니라 이 일대의 곳곳에 거처를 마련하고 계절마다 농사를 짓기 위해 이곳을 가끔씩 들르는 정도라 엄밀히 말하면 단임마을의 주민은 하나도 없는 셈이다.
북에서 태어나 30년 전에 귀순했다는 그는 서울과 춘천에 이곳에 온지 10년쯤 되었다. 남한 여러 곳을 다녀 보았지만 이곳처럼 그의 마음에 쏙드는 곳은 없다고 한다. 그가 이 마을을 얼마나 사랑하고 있는지 그의 눈빛만 보면 알 수 있다.
그가 태어난 곳은 백두산이 보이는 혜산이며 그곳과 비슷한 곳에 정착하고 싶어 전국을 떠돌다가 발견하게 된 곳이 바로 단임 마을이다. 9월은 메밀꽃으로 별천지가 된다. 넓은밭에 온통 하얀 메밀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고 밭의 뒤편은 초록의 산이 둘러 있어 초록과 하얀색이 멋진 조화를 이루어 환상적인 풍경을 그려내곤 한다.
이곳에서 멀지 않은 곳에 정선 아리랑의 발상지 '아우라지'가 있다. 두 갈래의 물이 한데 모여 어우러진다는 뜻으로 북쪽의 구절리에서 흘러 들어오는 구절천과 동쪽의 임계에서 흘러 들어오는 임계천이 만나 아름다운 내를 이루고 있다.
▶ 찾아가는 길
단임마을을 가려면 일단 정선을 가야 한다. 정선에서 숙암으로 간 다음 오대천 다리를 건너자마자 난 길로 접어들어야 한다. 이 길은 외길로 나있어 그 길을 쭉 따라가면 된다. 오대천 다리에서 단임마을 까지는 걸어서 3시간정도. 지프나 소형차가 다닐수 있는데 차량으로 갈 경우는 30분 소요. 단임천을 계속 끼고 마을 어귀까지 걸어가면 마을을 만날 수 있다.
11. 의성 금봉리
해발 843m인 청학산의 정수리께에 자리잡은 경북 의성군 옥산면 금봉리의 '소미기' '의방이' '물랭이골' 마을은 물질 문명과는 먼 거리를 두고 사는 곳으로 오지 여행을 나선 이드에게 많은 생각을 불러일으키게 한다. 문명과는 거리가 먼 사람들이 모여 살고있는 곳.
청학산의 모진 산바람이 합세하여 금봉리 사람들을 가두고 있다. 금봉리를 가려면 의성에서 버스를 타고 미골로 먼저 들어가야 한다. 의성에서 읍의 외곽으로 나서는 순간부터 비포장도로가 나타난다. 버스꼬리를 물고늘어지는 먼지와 함께 오지여행의 기분은 한층 긴장감을 갖게 된다.
비포장 자갈길을 l시간 이상 달리면 전홍동을 지나며 그간 주변에 펼쳐졌던 과수원과 작별하고 좁은 협곡으로 들어선다. 옥산면의 느리미와 새뜸을 지나면서 민가가 없는 계곡이 한참 이어진다.
평범하던 산세가 제법 눈길을 끌 만한 기암이 하나둘씩 나타난다. 삼거리에서 남쪽 고샅으로 돌아서면 저수지가 나오고 버스는 미골의 골 어귀에 다다르게 된다.
옥산 저수지를 반쯤 돌아섰을 때 버스에서 내려 산길로 들어서야 한다. 숲길은 저수지에서 소미기골 뒷산의 고갯마루로 곧장 뚫려 있어 상당히 가파르다. 등산하는 기분이 난다. 그런 숲길을 40여분 가야 고갯마루가 나오고 소나무와 전나무가 빼곡하게 들어선 숲을 빠져나가는 고원더기가 펼쳐진다.
한없이 이어지는 약초밭. 그 아래쪽에 소미기골이 있다. 마을 주민은 3가구다. 소미기 주변에는 괭이골과 물랭이골, 의방이 등 네 곳의 산촌마을이 있는데 괭이골은 주민이 모두 떠나 텅빈 마을이 되었다.
네 마을 중 물랭이와 괭이골은 골짜기에 들어서 있으며 소미기와 의방이는 청학산 산마루에 높이 솟아올라 있어 세상을 외면한 채 산상세계를 이루고 있다. 골짜기가 워낙 협소하여 농사를 지을 수 없다. 다른 곳과 반대로 평지를 만나려면 산 위로 올라가야 할 형편이다.
그래서 소미기골과 의방이는 해발 700M 이상의 고지대에 자리를 잡고 누대에 걸쳐 약초를 재배하고 있다. 시호, 방풍, 작약, 대황, 당귀, 두충 등 약초와 더덕, 도라지 등의 산채를 주로 재배한다.
주민들이 경작하는 고원 약초밭은 5만여 평. 최근 주민 수가 더욱 줄어 밭을 묵히는 형편이다. 마을 주변은 모두 약초밭 이어서 소미기는 청학산을 넘어오는 거센 산에 무방비인 채 노출되어 있다.
그 강풍을 견뎌내기 위해 건새를 얹은 소미기 집들은 모두 야트막하다. 낮은 지붕에 비해 문턱은 아주 높고 방바닥은 굴곡이 심하여 가만히 앉아 있기 힘들 정도다.
물랭이골은 70년대부터 주민의 이주가 시작되어 현재는 빈집이 많다. 청학이 산다고 해서 붙여진 청학산. 그 산에 청학이 산다는 믿음을 버리지 않고 사는 오지인들의 삶은 이곳을 쉽게 떠나지 못하게 그들을 붙잡아두고 있다.
▶ 찾아가는 길
의성군에서 금봉리까지 하루 세번 시외버스가 다닌다. 미골을 경유하여 북동쪽으로 뚫린 계곡길로 들어가는 것이 가장 편하다. 미골의 화전민 집단 거주촌에서는 청학산의 골마루를 헐어내고 조성한 의방이 약초밭이 보인다. 미골에서 의방이까지나 소미기까지 올라가는데는 1시간이 면 충분하다.
산 위에 자리잡은 별세계를 보려면 옥산 저수지에서 그 동쪽산을 넘어야 더욱 실감이 난다. 버스가 옥산 저수지의 둑으로 올라선 다음 한굽이를 돌아설 때 내리면 왼쪽 기슭으로 올라붙는 협곡이 나온다.
오른쪽 능선 위에 소미기골로 들어가는 소로가 있다. 그 길을 따라 1시간 정도 등산을 하면 신천지로서의 소미기골이 나타난다. 등산을 겸한 오지여행을 하고 싶다면 의방이에서 미골로 되돌아오지 않고 청학산을 넘어 안동군 길안면의 유곡이나 명곡으로 내려서면 된다.
의방이에서 출발하여 명곡까지는 3시간 정도. 민박의 경험이 없는 곳이므로 숙박비를 얼마나 받아야 하는지도 모르는 사람들이다. 감사의 뜻을 전할 수 있는 물건으로 성의를 표한다.
12. 봉화 홍점 마을
경상북도 봉화군 소천면. 경상북도 최고의 두메, 봉화군에서도 가장 외진 벽지로 알아주는 곳이다. 산세가 벼랑을 이루며 곳곳에 크고 작은 폭포와 깊은 소가 즐비하다.
태백산 남류맥이 청옥산과 각화산의 지겟가지를 벌리면 그 안쪽에 현동 60릿골이 펼쳐진다.
현동골은 잔대미에서 홍제사골의 물을 보태 10여 리 아래의 현동리에서 낙동강으로 흐른다.
이런 지형적 조건에 소천면이 위치한다. 비탈이 심해 한 면의 넓이가 한 군의 넓이보다 넓다고 하면 이곳 땅의 특징을 금방 알게 된다.
게다가 얼마나 외진 곳이면 춘양면과 경계를 이루는 각화산 기슭의 각화사 어름에 태백산사고를 세웠겠는가. 홍제삿골의 끝마을이 홍점마을이다. 인심 좋기로 소문이 근동에 자자하다.
태백을 벗어나 경상도와 의 경계인 돌고개를 지나서 열목어 서식지라는 백천계곡를 넘으면 길고 긴 흰뱅이골이 나온다. 홍제삿골과 만나는 곳에 작은 학교가 하나 세워져있다. 썰렁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소천초등학교 황평분교다. 가르칠 아이들이 너무 적어 폐교되는 운명을 맞은 그런 학교다.
예전에는 40여 가구의 주민이 살았으나 모두 이주하고 10여 가구를 밑도는 사람들이 홍제삿골을 지키고 있다. 홍제삿골에서 홍점마을로 가는 냇가에는 기가 막힌 봉우리가 솟아 있다.
'벼락바우'라는 암봉이다. 몇 년전 도깨비에 홀린 어떤 사람이 이 바위 위에서 도깨비와 밤새 술판을 벌였다고 한다. 그런데 날이 샌 뒤에 보니 간밤에 그토록 마셨던 술이 모두 쇠똥이더라는 것이다.
그바위 아래의 맑은 물에는 피리, 꺽지가 유유자적하며 헤엄을 치고 있다. 이 물줄기을 따라가면 넓은 채소를 가꾸고 벌을 치며 생계를 유지하고 있다. 이 마을은 언덕 위에 성황당이 멋지게 자리잡고 있다. 반달형의 명당터에 성황당이 있어 그 품새가 그럴 듯하다.
성황당 옆에 집이 한 채있는데 이곳에서 고시 공부를 한사람들이 모두 합격을 하여 명당의 체면을 톡톡히 세워 준다. 성황당은 매년 정월 보름에 제사를 지낸다. 안을 들여다보면 태백산령 성황지위라는 위패가 있다. 함석집을 지나 왼쪽 골짜기를 1Km 정도 올라가면 신라때 고찰이라는 홍제사가 나타난다.
현대의 건물은 30년 전에 새로 지은 건물이라 세월의 손때를 느낄 수 없다. 절을 뒤로하고 계속 골짜기를 올라가면 좌우 산세가 벼랑을 이루고 있고 곳곳에 크고 작은 폭포와 깊은 소가 즐비하다. 무릉도원의 입구처럼 그 경치가 빼어나다. 애기무덤을 가기 위해 산비탈을 오르면 그야말로 무인지경이 이어지면서 세상과 완전히 차단되는 그런 느낌을 받게 된다.
10여리 걸으면 당도하게 되는 애기무덤. 양지쪽 산비탈에 있다. 옛날 어느 때인지 몰라도 이 길을 통해 삼척 땅으로 가던 골 원님이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데리고 가던 딸이 갑자기 죽게 되었다. 먼 여행길에 노독이 났던 것이다. 원님은 할수 없이 이곳에 딸을 묻고 갔다. 그러면서 누구든지 벌초를 해주면 복을 받게 된다고 했다. 복을 받기 위해서인지 사람들은 가끔 벌초를 해준다고 한다.
13. 울진 '왕피리'
경상북도 울진군 서면 왕피리는 오지치고 사람들이 많이 사는 곳이다. 세월이 흐를수록 주민수가 격감하는 것이 오지의 운명인데 이곳만은 유달리 주민수가 줄지 않고 오히려 고향을 찾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그런 곳이다. 길목은 맑고 깨끗한 왕피천이 흐르면 허물어진 굴피집도 볼 수 있다.
왕피리로 넘어가는 길목인 통고산의 박달대는 통곡하며 넘어가는 고갯길이라는 애칭을 가지고 있다. 왕피리에서 통곡하며 박달재를 넘는 주인공은 고려의 공민왕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홍건적을 피해 피난을 왔던 공민왕이 안동과 영양까지 피난을 왔다가 이 고개를 넘으며 통곡을 했다는 얘기가 전해진다. 왕피천은 양쪽이 절벽인데다 여러 곳에 깊은 웅덩이가 패어 있어 지나다니기가 매우 어려운 곳이다.
왕피리를 찾는 방법은 봉화행 버스를 타고 불영계곡을 거슬러 오르다가 삼근리에 하차. 두어 시간을 걸어야 박달재에 오를 수 있다. 삼근에서 왕피리까지 가는 버스는 하루에 한차례 밖에 다니지 않는다. 버스 시간을 맞추기 어려워 대부분 걸어서 간다.
30리 길을 걸어야 한천마을까지 다다를 수 있는데 험준한 산세가 보여주는 다양한 풍경을 구경 할 수 있다. 직선거리는 불과 20리밖에 되지 않지만 산이 가로막혀 산을 돌아가게 되어 걸어야 하는 거리가 멀어진 것이다.
주민들은 지름길을 따라 익숙한 발걸음으로는 두 시간 걸린다고 하지만 초행길인 사람들은 찻길을 따라 걷게되면 박달재에 오르는 데만도 두시간이 걸린다. 박달재 일대는 춘양목 자생지로 유명하다.
한 나무에서 전봇대 3개를 끓어내도 아래 위를 구별하지 못할 정도로 곧게 자란다는 춘양목이 울창한 숲을 이루어 이국적인 풍경을 자아낸다. 고갯마루를 올라서면 왕피천 오지를 감싼 주변의 산군이 펼쳐진다.
한국이 산이 많은 나라라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된다. 동쪽의 대령산, 남서쪽의 금장산과 만나서는 태백산맥의 일월산 등이 첩첩으로 싸여 있다. 박달재에서 남쪽 산록의 급사면을 곧추 내려가면 안골마을이 나온다.
이곳부터가 왕피리다. 왕피리의 본 마을은 안골마을에서 내려가는 지류가 왕피천과 마주치는 지점에 있는 거리골이다. 거리골은 오지마을의 전형적인 모습이 덜하다. 오지마을의 전형을 보고싶다면 통고산 동쪽기슭에 있는 장재터로 향한다. 능선위로 올라서 고갯마루를 넘으면 장재터가 시작된다.
장재터는 원래 광산촌이다. 그러나 광산들이 폐광되면서 주민들이 이곳을 떠나 오지답게 주민 수가 적다. 장재라는 지명은 이 일대에 주석노다지 광이 있어 큰돈벌이 되는 곳이라는 뜻에서 유래되었다.
계곡이 협소하고 물 사정이 넉넉지 않아 땅을 일구며 살기에는 적합하지 않다. 마을의 느낌은 삭막하다. 농토가 없고 대신 분교 운동장의 녹슬은 슬레트 지붕만이 덩그러니 보인다. 왕피리 안쪽에 위치한 동수곡을 가는 길목은 맑고 깨끗한 왕피천이 흐른다. 길가에는 허물어진 굴피집이 있다.
동수곡에서 한천 마을까지는 약6Km 그 구간은 무인지경이의 원시림이 펼쳐진다. 양안은 거의 절벽으로 일어서 있고 통로는 개울 안으로 이어진다. 가끔 넓어지는 곳마다 집터가 있을 뿐 사람들이 전혀 살지 않는다.
한천으로 들어서면 풍경이 완전히 달라진다. 춘양목이 하늘을 가린 고갯마루에 펼쳐지는 양한천 일대의 정경은 한국 오지마을의 전형을 이룬다. 수석 같은 기암으로 이뤄진 하안을 따라 굽이치는 물 맑은 왕피천에 내려다보이는 양지바른 남향에 옹기종기 터를 잡고있는 농가들. 우리네 한국 사람들이 마음속으로 그리는 그런 마을의 모습을 왕피리는 간직하고 있다. 찾아가는 길 왕피리는 울진읍에서 30Km 정도 떨어져 있다.
▶ 찾아가는 길
울진 보다는 영주를 경유 하는게 편하다. 영주에서 울진행 버스를 타고 서면 삼근리에 하차하면 된다. 삼근에서 왕피리로 들어가는 버스는 하루 한차례 밖에 없다. 도보로 갈 경우 삼근에서 왕피초등학교까지 4-5시간 정도 걸린다. 산으로 들러가지 말고 찻길을 따라 우회를 해야 한다.
삼근에서 동수골까지는 4시간 소요. 삼근에서 박달재를 넘어 학교 건너편 안마을로 들어서 남쪽으로 가로막은 능선길로 들어서면 다소 시간을 절약할 수 있다.
14. 정선 "연포, 소사마을"
우리나라에서 오지 마을이 가장 많은 곳은 정선과 영월 부근이다. 연소,소사마을도 정선에 위치한다. 동강 변의 오지마을처럼 이곳도 지형적으로나 행정적으로 오지를 벗어나기 힘든 조건을 갖추고 있다. 접근하기 어려운 곳에 있어 오지 신세를 선천적으로 타고 난 곳
지형적으로 볼 때 동강이 정선에서 시작되고 정선 포구로 유입되면서 끝나게 되는데 이 마을들은 중간에 자리를 잡고 있다. 정선 쪽에서나 영월 쪽에서나 모두 접근하기 어려운 곳에 위치하고 있다.
행정적으로 볼때는 정선군과 영월군 그리고 평창군의 경계가 갈라지는 백룡동굴에서 2Km 떨어진 남쪽에 위치한다. 때문에 이마을을 들어가려면 정선이나 영월 평창 어디서건 1시간 이상 시외버스를 탄다음 산길을 서너시간 걸어야 마을에 당도할수 있는 산간오지마을이다. 이 마을을 가려면 신동읍 예미리를 경우해 가는 것이 가장 좋다.
평구나 고성초등학교 앞에서 하차하여 산을 접어들어야 한다. 협곡으로 들러서서 30분 정도 걸어 들어가게 되면 동강과 만나게 된다. 길은 오직 외길. 서쪽으로 흐르는 물길 뿐이다. 강의 양안은 깎아지른 듯한 절벽이 세워져 있어 이방인의 기를 한껏 꺾어 놓는다. 서쪽에 험준하게 솟아오른 신병산을 우회할 수밖에 없다.
신병산 동쪽에 원덕천이라는 마을을 경유하여 동쪽 산록을 타고 소동을 지나 2시간 남짓 걸어가면 소사마을 어귀에 다다르게 된다.
토벽의 담배 건조막을 집집마다 가지고 있는 소사마을은 적막하기 이를 데 없는 모습으로 외지인을 맞는다. 10가구 정도의 주민이 사는 마을은 밭농사를 지으며 생계를 꾸려 나간다. 전기는 일찍부터 들어왔다. 동강 따라 전신주를 설치하는 것이 용이하여 79년에 전기가 들어왔고 전화는 86년에 가설되었다.
소사마을의 강 건너편에 연포마을이 있다. 마을이 서로 마주보고 있는 셈이다. 이 두 마을 건너다니기 위해 삽다리가 놓여 있는데 국내에서 보기 드문 모습이다. 삽다리란 소나무로 만든 다리로 장마 때가 되면 동강물에 휩쓸려 다리가 없어진다. 두 마을 사람들은 두레를 통해 장마가 끝난 뒤 다리를 다시 놓고 하는 식으로 다리를 매년 만든다.
다리가 떠내려가는 장마 때에는 나룻배를 타고 왕래를 해야 한다. 연포에 있는 고성초등학교 연포분교로 통학을 하는 아이들은 배를 타고 등교를 하게된다. 소사의 강변은 풀밭이 아름답게 조성되어 있어 야영을 하기에 더없이 좋다. 유독 굴이 많은 동네라 밤이면 먹이를 찾아 나온 박쥐들이 냇가를 떠돌고 있는 풍경이 이색적이다. 냇가에서 보면 연포마을이 건너다 보이고 초등학교의 뒤에는 세 개의 봉우리에 달이 뜨는 모습은 가히 고혹적이다. 봉우리마다 달이 저마다 떠서 달이 세 번이 뜨는 것을 구경할 수 있다.
▶ 찾아가는 길
정선군 신동읍 예미리를 경유하여 가는 것이 가장 빠르다. 예미에서는 운치리까지 가는 마을 버스가 있다. 그 버스를 타고 평구나 고성초등학교 앞에서 하차하여 산길로 접어들면 된다. 좌측에 이정표가 있다. 6.4Km 정도 도보로 걸어 들어가면 마을이 나온다. 이 비포장도로는 지프차의 통행이 가능하다.
15. 봉화 두음리 '듬골'
봉화군의 춘양면과 소천면은 춘양목으로 널리 알려진 적송의 원산지이다. 이곳의 붉은 몸체의 소나무는 최고의 건축자재로 각광을 받아 예부터 궁궐이나 사찰 또는 관청은 물론 대가집의 드높은 용마루를 떠받치는 기둥감으로 애용되었다.
16. 인제 '설피밭'
열목어는 눈에 열이 많아 그 열을 식히기 위해 늘 차가운 물을 찾아 강물을 거슬러 오르며 사는 냉수어족으로 천연기념물로 보호를 받고 있다. 이 열목어가 살고 있는 마을이 설피밭이다. 이 고기들이 살고 있어 물이 매우 맑고 깨끗하다.
17. 하동 '논골마을'
지리산 기슭에 자리잡은 논골마을. 하동군 청암면 금남리에서 북쪽으로 들어가야 만날 수 있다.
18. 경남 산청 '오봉마을'
툇마루에 누워 산장에서처럼 지리산 자락을 고즈넉이 바라볼 수 있는 마을이 바로 오봉마을이다.
19. 단양 '빗재마을'
단양의 빗재마을은 마을 아이들이 청화백자의 파편으로 소꿉놀이를 하는 그런 곳이다. 선조들이 주변의 토지 특성을 살려 지혜롭게 빚어낸 청화백자가 오늘날의 분청자완으로 변하기까지 빗재마을은 도자기 변천사와 운명을 함께 한다.
20. 장수 '신기마을'
청학동 도인들이 새로 이주한 마을인 신기마을은 소백산맥의 맹주인 덕유산이 지리산으로 산줄기를 넘기기 전에 무주, 진안, 장수군 일대에 무진장의 산악지대를 형성하고 있다.
21. 청송 '내원동'
주왕산 기슭에 자리를 잡은 내원동. 이곳을 가려면 청송읍을 지나 주왕상으로 가야 한다. 주왕산 입구를 지나면 매표소 부근에 대전사가 있고 절을 돌아 내원동 큰골에서 발원하는 내를 따라오른다.
주왕산 제3폭포에서 15분쯤 산길을 걸으면 `전기 없는 마을`로 알려진 오지마을 내원동이다. 9가구가 사는 이 마을은 차가 들어오지 못하고, 전화도 없는 외딴 산동네. 국립공원지역이어서 전봇대는 없지만 발전기나 태양열을 이용해 전기를 만들어 쓴다. 첫집은 22년전 문닫은 주왕산초등학교 내원분교. 등산객들을 맞는 간이식당·찻집이 들어섰다.
주민들은 본디 담배농사나 보리·기장·메밀과 채소 따위를 재배하며 살았지만, 등산객들의 발길이 이어지면서 식당이나 민박을 하며 산다. 농가를 개조한 식당들에서 도토리묵·파전 등과 약초술들을 판다. 내원동은 바람이 세기로 이름높은 마을이다. 주민들은 “제주도와는 바람에 관한 한 사돈지간”, “세기로 따져 제주도 바람에 앞선다”고 주저없이 말한다.
늦가을 매운 바람에 휘날리는 마을 가운데의 억새밭이 제주도를 연상케한다. 어린 산수유나무에 지줏대를 세우던 주민 김재창(71)씨는 “올해는 단풍이 들다 말고 져버려 아쉽다”면서도 “단풍이 곱지 않아도 경치는 그대로”라며 마을 자랑을 잊지 않는다. 마을길을 더 오르면 가메봉(882m)을 거쳐 제2폭포로 내려서는 등산길을 탈 수 있다.
22. 청송 '계당리'
아무도 살지 않는 마을이 있을까? 이런 마을이 바로 청송의 오지마을 계당리다. 95년 봄, 마을 사람들이 모두 떠나 마을은 무인지경으로 남아있다.
23. 홍천 명개리 '아침가리'
아침에 밭을 간다는 뜻의 아침가리는 지도상으로는 '조경동'이라고 표기되어 있는 마을이다.
24. 강원 인제 미산계곡(한강)
오대산 서쪽, 강원도 인제군 내린천 미산계곡은 한강(북한강)의 최상류 지역이다. 오지의 때가 어느정도는 벗어졌지만 깊은 산속을 구비도는 계류는 예전과 변함없이 맑고 푸르다. 계곡의 경관이 뛰어나며 수량도 풍부하다. 청정자연과 함께하는 즐거운 휴가여행지로 삼을만 하다.
25. 경북 봉화 옥방천(낙동강)
경북 봉화는 낙동강의 최상류지역이다. 부산앞바다에서부터 장장 800리를 거슬러 올라간 낙동강은 강원도와의 접경인 경북 봉화 일원에서 수많은 청정지류를 형성한다. 그 중 남회룡리 일원의 옥방천은 상류 중에서도 최상류 지역으로 산골오지마을 기행과 더불어 깨끗하고 조용한 계곡탐승도 겸할 수 있다.
26. 충북 보은 만수/서원계곡(금강)
남한 3대강에 속하는 금강은 지류가 매우 넓게 발달되어 있다. 충청도와 전라도, 그리고 경북땅에서 물줄기를 받아 유역을 확장해 나간다. 특히 충북 보은 속리산 남쪽자락은 금강의 최상류지역으로 서원계곡과 삼가저수지, 오지산골 만수계곡의 비경이 비교적 때묻지 않은 채로 남아있는 곳이다.
27. 전북 진안 백운동 계곡(섬진강)
낙동강처럼 남해바다로 흘러드는 섬진강은 전남과 경남의 경계를 구분짓고 구례 곡성을 지나 전북 남원~임실~진안에까지 물줄기가 이어진다. 진안군 백운면에 이르면 섬진강 발원지인 신암계곡과 뛰어난 계곡경승을 간직한 백운동계곡에 이른다. 마이산, 성수산, 팔공산 등의 명산기행도 겸하고 깨끗한 계곡에서의 피서도 즐길수 있다.
28. 전남 담양 가마골(영산강)
전남 담양 가마골은 남한 5대강의 막내동이, 호남의 젖줄 영산강의 발원지이다. 목포를 거슬러 나주, 광주를 거쳐 담양읍에 이르고 풍치절경의 추월산과 담양호반을 지나면 감추어진 비경지대 가마골을 찾아낼 수 있다. 계곡 주변에 야영장 시설이 잘 갖추어져 있으며 골짜기마다 여러 코스가 잘 정비되어 있어 트레킹 또는 가벼운 도보여행도 무리없이 즐길 수 있다.
29. 경남 울산 석남사 계곡(태화강)
태화강은 동해바다로 흘러드는 몇 안되는 강 중 하나로, 오늘날의 울산광역시를 있게 한 명수(明水)로 불리운다. 특히 상류부의 영남알프스 산군의 중심인 석남사골 계곡은 울산시내의 강 하류부와는 딴판으로 곳곳에 절경과 명승, 수려한 계곡 풍광이 빛나는 일급 피서지이다. 이웃한 가지산도립공원 일원의 산악공원, 각종 문화유적 답사, 그리고 시원한 계곡여행코스로 추천할 만 하다.
30. 강원 백전 물레방아마을
곡식을 찧던 삶의 터전이자 불륜의 현장(?)이던 물레방앗간. 아직도 물레방아를 사용하는 마을은 전국을 통틀어 이곳이 유일하다.다른 곳의 물레방아는 토속적인 멋을 더하기 위한 전시용일 뿐이다.
마을 어귀의 물레방앗간은 3평 정도의 허름한 목조건물이다.‘물레’(바퀴부분)는 건물 밖에,‘방아’(곡식을 찧는 공이)는 안에 설치돼 있다.
물레는 직경 250㎝,방아의 길이는 140㎝,방아는 직경 15㎝.물이 흐르면 물레가 돌아가고 방아는 상하운동을 하며 곡식을 찧는다.우리 조상들은 이렇게 자연에 순응하며 그 품에 안겨 ‘물의 힘’으로 곡식을 찧어왔다.
150여년 된 물레방아가 요즘도 제 기능을 하는 것은 수량이 풍부해서다.물 공급원은 마을에서 3㎞ 떨어진 해발 1000여m의 용소(龍沼).이 지하동굴에서 물이 콸콸 용솟음쳐 물레방아로 흘러내려온다.
그 많던 전국의 물레방아는 예전만큼 물이 흐르지 않아 바퀴를 돌릴 수 없었다.그래서 기억 속으로 사라져갔다.
몇년에 한번씩 보수하면 물레방아는 이 마을 16가구가 먹을 쌀 콩 고추를 너끈히 찧어낸다.마을 사람 누구든 언제나 사용할 수 있다.명절을 앞두면 떡방아를 찧으려는 아낙네들로 북적거린다.
정선읍에서 차로 1시간.누런 황소가 마당에서 포근한 봄볕을 쬐고 처마엔 옥수수와 호박이 걸린 오지마을이다.하지만 험한 산길을 누빌 힘좋은 트럭이 집집마다 세워져 있다.‘토속’과 ‘현대’는 공존할 수 있다는 느낌이다.
물레방아마을은 정선군 사북읍까지 가서 북일리∼백전삼거리를 거쳐 찾아갈 수 있다.
31. 화천 비수구미
강원도 화천군의 비수구미마을은 강원도 안에서도 대표적 오지마을이다.
마을 뒤로는 산세가 험한 해산이 솟아 있고 앞으로는 파로호가 누워 있다. 평화의 댐 접근도로가 생기기 전까지는 말 그대로 오지마을 신세를 면치 못했다. 지금도 가는 길은 쉽지 않다. 일단 승용차로 경춘가도를 달려 화천읍을 통과한 뒤 북한강 상류인 파로호 북쪽, 평화의 댐 아래편 강변에서 보트로 갈아타고 들어가야 한다. 한국전쟁 뒤 사람들이 들어와 농사를 지으면서 마을이 형성됐다. 많을 때는 6가구가 밭을 일구었지만 화전이 금지되면서 3가구만 남게 됐다. 마을 한가운데로는 해산(1190m)에서 발원한 계곡물이 흘러 파로호로 내려간다.
오염원이 전혀 없으니 계곡물은 청정하기만 하다. 들리느니 새소리와 물소리, 개구리 울음소리 뿐이다. 미리 민박을 하는 세 가구에 전화를 해야 보트가 마중을 나온다. 화천읍에서 해산터널을 지나고 평화의 댐에 닿기 전 강변에 수하리낚시터라는 입간판과 조립식 건물 한 채가 눈에 띈다.
이곳 강변이 바로 수하리 선착장. 보트를 타면 3~5분 정도 후 비수구미 마을에 닿는다.
아직도 찾는 이가 드문 비수구미마을의 계곡은 더위 탈출에 더없이 좋다. 계곡에서 내려오는 골바람이며 호수를 휘돌아 올라오는 강바람이 워낙 서늘해 삼복 더위에도 밤이면 난방을 해야 한다. 민박집들은 보일러 시설을 갖췄지만 장작불을 때주는 방도 있다.
▶ 가는길
화천이나 양구에서 평화의 댐 방면으로 가는 대중교통편은 없다. 화천읍을 지나 해산터널을 통과,해산전망대에서 잠시 숨을 고른 뒤 평화의 댐을 향해 내려가면 수하리낚시터가 나타난다. 이곳 강변에 차를 대고 모터보트로 갈아탄다. 마을 주민들에게 미리 전화로 연락해야 보트를 이용할 수 있다. 왕복 2만원.
32. 사람이 그리운 간이역 - 심포리역
승용차가 접근하지 못하는 역. 그곳에서 근무하는 역무원들은 "사람이 그립다"고 말한다. 높은 산중턱에 있어 봄이 평지보다 10여일 늦게 찾아온다. 산과 들을 아름답게 수놓았던 개나리, 진달래도 이제야 고개를 숙이고 뒤를 이은 싸리꽃이 봄의 교향악을 하얗게 연주한다.
온통 푸른 색에 둘러싸인 심포리역(강원도 삼척시 도계읍 심포리). 한때 잡상인들로 북적거리던 이곳이 이젠 한적한 간이역으로 변했다. 통리역과 연결되는 하루 4편의 비둘기호가 밖의 세계와 연결시켜 주는 유일한 통로. 역사(驛舍)에서 태백 ~ 삼척을 잇는 국도 38번과 만나는 곳까지는 10분거리. 철길을 걷다보면 잠시나마 어릴적 향수에 젖게 된다.
역사뒤로 내려다보이는 계곡은 미인폭포로 이어진다. 미인폭포의 양옆으로 펼쳐진 절벽은 한반도 지질의 변천사를 한눈에 볼 수 있어 지질학도들이 자주 찾는다.
심포리역은 열차의 독특한 운행방법으로 국내 철도사의 한장을 장식했다. 무연탄등 이 지역 특산물을 싣고 심포리역에 도착한 화차는 통리역(강원도 태백시)까지 경사가 급해 인클라인(경사진 곳에 레일을 깔고 전기모터로 열차를 끌어올리는 일종의 케이블 카)방식으로 운행됐다. 영동선중 통리역(7백70)과 아래쪽 심포리역은 직선거리로 1.1㎞. 이 구간은 워낙 경사가 심해 증기기관차의 힘으로는 통행이 불가능했다. 그래서 인클라인방식으로 화차를 움직였던 것. 인클라인 방식을 위해선 역과 역사이에 2개의 선로를 만들어야 했다.
통리역을 중심으로 각 선로에 있는 화차를 로프로 연결한다.이때 심포리역에 있는 화차는 통리역의 화차보다 무게가 가벼워야한다. 통리역에 설치한 6백마력짜리의 모터가 작동하면 화차가 내려가게 되며 그 힘으로 심포리역에 있던 화차가 올라온다.
그러나 객차는 너무 무거워 이 방식으로 끌어올리지 못했다. 때문에 강릉에서 심포리까지 열차를 타고온 승객들은 심포리역에서 하차한 후 통리역까지 걸어올라가 열차를 바꿔타야 했다. 이 지역 출신으로 29년간 역무원생활을 해온 홍성태(57. 강원도 삼척시 도계읍 심포리)씨는 "60년대 통리역으로 오르는 길목엔 냉차집이 번창했고 승객의 호주머니를 노리는 야바위꾼들도 몰려들어 무법천지였다"고 회상한다.
그런가 하면 40 ~ 50명이나 되는 지게꾼들은 승객의 짐을 옮겨주는 지게질로 생업을 잇기도 했다. 운임은 20㎏정도의 짐을 올려주는데 4백 ~ 5백원으로 적지않은 돈이었다. 39년부터 사용됐던 인클라인시설은 지난 69년 터널개통과 함께 사라졌다. 지금의 철로길이는 7.7㎞. 그 사이에 완만한 경사의 터널 12개가 뚫려있어 디젤기관차가 힘겹게 오르내린다. 홍씨의 이야기가 계속 이어진다.
"길이가 가장 긴 산골터널(1천1백)에서 기관차는 과열된 엔진을 식히기 위해 정차했지요. 기관차 꽁무니에 붙은 객차는 연기가 가득한 터널안에 20분정도 갇히게 돼 승객들의 고생은 이만저만 아니었어요." 지난 70년대 이 지역을 운행하던 영동선 열차는 화차 뒤에 3 ~ 4량의 객차를 달고 다녔다. 힘에 부친 기관차는 터널을 지나면서 엔진을 식히기 위해 쉬었다. 백두대간을 가로질러 달리는 영동선도 곧 환갑을 맞게 된다. 심포리역에서 통리역 방향으로 2백여 걸으면 멀리 통리재가 보인다.
영동과 영서를 연결해주던 흔적이 어렴풋이 남아있는 통리재. 열차의 기적소리는 세월의 강을 건너 우리에게 다가온다.
33. 삼척 중봉리 절골
청옥산 줄기인 고적대 아래 위치한 부채바위골과 중봉골은 무릉계곡의 비경은 아니지만 원시림과 맑은 계곡이 흘러 한적한 휴가를 즐기기에 더없이 좋은 곳이다. 특히 중봉리 절골은 계곡 상류에 민가가 없어 연칠성령과 망군대에서 흐르는 냉기어린 물이 더없이 맑기만 하다.
절골로 접근하려면 우선 정선이나 태백을 기점으로 삼아야 한다. 절골 입구는 정선과 태백을 연결하는 35번 국도상의 중봉리 마을 초입의 신용상회다. 길은 콘크리트가 포장돼 차량접근이 용이하며 계곡을 끼고 이어진다. 이 길은 상수도보호수역이란 푯말을 지나면서 민박집이 하나 둘 눈에 띈다.
절골의 백미는 민박집이 있는 벌마을을 지나면서부터 하나 둘 나타나는 비경에 있다. 특히 턱골 이후론 음지라 시원하고 맑은 계곡 옆으로 모래사장이 놓여 여름철 휴가객이 자주 이용하곤 한다. 턱골 위 소내 마을까지는 길가에 소나무숲이 우거져 더위를 피하기 좋고 비포장길이 이어지고 한적한 탓에 사색하며 걷기에 좋은 곳이다.
폐교된 갈천초등학교 중봉분교는 근래 사찰로 활용하고 있다. 이 사찰 앞개울이 천엽에 가장 인기있는 곳이다. 코펠에 어항을 만들어 밥과 된장을 넣어두면 굵직한 돌고기들이 쉽게 걸려든다. 중봉분교부터는 민가도 없고 단지 절골 최상류에 정연홍씨 집이 있을 뿐이다. 절골의 백미는 중봉분교에서 정연홍씩 집까지. 휴식년인 고적대를 통한 하산은 가능하지만 입산은 허가를 맡아야 한다.
34. 춘천 품걸리
KBS-TV '이것이 인생이다'에서 한 시각장애자가 산골 오지에서 토종벌을 키우며 살아가는 모습을 방송한 적이 있다. 그가 사는 곳이 단 세 가구가 사는 춘천시 동면 품걸2리다. 품걸리는 외지인들이 거의 찾지 않는 곳이고 찾기도 쉽지 않은 곳으로 동강처럼 사람들의 잦은 발길로 파괴되지 않기를 바라면서 소개한다.
사실 오지란 일반 관광지처럼 소개할 것이 별로 없는 곳이다. 무언가 볼거리가 있는 것이 아니라 자연 그대로를 느끼기 위해 가는 곳이기 때문이다. 품걸리는 찾아가는 외지인이 없는 관계로 민박집이 없다. 하 지만 문을 두드리고 하룻밤 쉬어가기를 청한다면 마다할 사람도 없을 것 같다. 품걸2리는 선착장에서 두시간 걸어야 도착할 수 있는 산골마을로 사람들은 조그만 밭에 자라는 옥수수, 토종 꿀벌들과 함께 살고 있다. 삼림욕이 따로 필요없는 이 길은 구비돌 때 마다 나타나는 뽕나무 오디가 나그네의 발길을 더디게 한다. 이곳의 오디는 무척 신선하고 달콤해서 아직도 단맛이 입에 맴도는 것 같다. 이 울창한 잣나무와 밤나무, 뽕나무 숲에 둘러싸여 잘 보이지 않는 그곳에 숨은 듯 마을이 있다.
이곳에서 사는 영춘-영규 형제를 만나면 자연에 대한 자격증 하나는 따올 수 있다. 이들은 벌의 날갯짓만 들어도 어디가 아픈지 알아내는 그런 사람들이다. 품걸2리 아랫동네에는 주막집이 있는데 몸이 안좋아 이곳에 들어온 부부가 살고 있다. 누가 올까 싶은데 선착장이 있는 품걸1리에서 농사일을 마친 주민들이 트럭을 몰고 한시간 이상 달려오는 곳이다. 이곳에서 도시인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무 것도 없다. 그저 자연과 그 속에서 사는 사람들을 보며 놀라는 것이 전부다. 이곳 사람들의 삶이 귀하게 보전되도록 모든 사람들에게 부탁드린다.
▶ 가는 길
가는 길은 두가지다. 하나는 양평에서 44번 도로를 타고 홍천-성산리를 지나 왼쪽길로 들어서서 비포장 도로를 두시간 가량 달려 도착하는데 사륜 구동이나 하부가 높은 차량을 이용해야 한다. 다른 방법은 춘천에서 소양강댐 주차장에 도착해 셔틀버스를 타고 선착장에 와서 하루 두번 운행하는 배를 타고 품걸리 선착장에 도착한다. 이 배는 사람이 안보이면 그냥 지나치므로 시간이 되면 선착장에 나와 있어야 한다.
35. 대관령 차항마을
강원도에서도 가장 설경이 아름다운 곳은 대관령이다. 대관령 옛 고속도로 주변과 삼양목장, 차항마을이 소문난 눈마을이다.
옛 고속도로는 누구나 한번쯤 넘었던 길이지만 차량통행이 잦았던 당시에는 자동차 매연에 눈이 더럽혀져 아무런 감동을 주지 못했다. 그러나 요즘은 눈이 내린 다음에야 사진작가들이 찾아와 설경을 찍을 정도로 마니아들이 많다. 길섶에는 민가 한채 찾기 힘든 목초지다. 백설로 뒤덮인 목초지의 곡선이 아름답다. 옛 고속도로 휴게소 옆에는 선자령으로 오르는 등산로가 놓여 있고 주변에는 평창 국유림 관리사무소에서 조성한 전나무 숲이 병풍을 두른 듯 서 있다. 창처럼 날카로운 나무를 덮은 솜눈. 눈은 아무리 모난 것들이라도 포근하게 감싸줄 만큼 부드럽다. 옛 고속도로 주변의 선자령∼대관령∼능경봉을 잇는 코스는 산악인 사이에서는 신설 산행코스로 유명하다.
대관령 삼양목장은 바람이 거칠어 포근한 눈을 볼 수는 없다. 발자국을 쉬 덮어버릴 정도로 몰려다니는 눈보라가 거센 곳이지만 하늘과 맞닿은 설원의 광활함은 가슴을 탁 트이게 하기 충분하다. 목장은 모두 6백만평. 아시아에서 가장 규모가 크다. 이중 목초지는 4백50만평. 목장 내 임도를 모두 합하면 120㎞나 된다. 목장을 한바퀴 도는 주도로만도 22㎞다. 겨울에는 정상까지 가는 것은 힘들고 바람이 세지 않은 저지대만 둘러볼 수 있다. 대관령 목장은 영화와 드라마, CF 등의 단골무대다. 서울 종합촬영소만큼이나 많은 작품을 찍었다. ‘태극기 휘날리며’ ‘별’ ‘바람의 파이터’ ‘이중간첩’ ‘중독’…. 드라마로는 ‘가을동화’ ‘남자의 향기’를 목장에서 찍었다. ‘가을동화’로 유명해진 은서나무와 준서나무, ‘연애소설’의 차태현나무 등을 찾는 재미도 쏠쏠하다.
도암면 차항마을은 눈이 오지 않으면 눈길조차 받지 못하는 평범한 산마을이다. 마을 들머리엔 고만고만한 밭고랑이 흩어져 있고, 마을 깊숙이 들어가면 자그마한 목장들이 나온다. 목장이 들어선 것은 25년 전 농업진흥청 축산기술소가 들어오면서부터다. 평창의 브랜드 한우가 이곳에서 탄생했다.
눈덮인 차항마을은 마치 추사의 세한도를 보는 것 같다. 목초지는 제주도의 오름처럼 봉곳하게 솟아 있다. 초지마다 이정표처럼 세워놓은 나무 두어 그루의 모습이 평화롭다. 차항마을은 눈이 많이 오면 발이 빠지지 않도록 설피를 신고 소가 끄는 썰매 발구로 짐을 실어나르던 곳이다. 나무를 깎아 만든 전통 사형스키를 타고 다니며 창으로 멧돼지를 잡았던 눈마을이었다. 1970년대 들어 사냥이 금지되면서 사라져버린 썰매사냥은 지금은 마을 어른들의 구수한 추억 속에나 남아 있다.
동해에서 넘나드는 습한 바람들을 눈꽃으로 바꿔놓는 대관령. 겨울이 겨울답게 남아 있는 설국(雪國)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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