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이 끝나는 곳에서 우리의 길은 시작되고

여행정보

노포(老鋪) 8. 한일식당- 소문난 50년 전통 아귀찜 맛집

오지하이에나 2018. 1. 11. 08:57

소문난 50년 전통 ‘아귀찜 맛집’…깔끔한 분위기는 덤


        


한일식당 김인교 사장은 항상 주방에서 직접 음식을 조리한다.<br>
한일식당 김인교 사장은 항상 주방에서 직접 음식을 조리한다. 




47년 역사의 한일식당이 깔끔하게 탈바꿈한 모습.
47년 역사의 한일식당이 깔끔하게 탈바꿈한 모습.


매일 새벽 어판장에서 입찰로 구입한 신선한 해물재료로 만든 해물찜과 해물탕.
매일 새벽 어판장에서 입찰로 구입한 신선한 해물재료로 만든 해물찜해물탕.


울진군 후포면 후포 삼거리에 ‘50년 전통 한일식당’이 있다.
아귀찜과 해물탕 등 해물전문 식당이다. 

50년 전통의 역사를 간직한 식당이라, 세월의 흔적이 덕지덕지 묻어 있는 옛날식당쯤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한일식당을 찾아가니 깔끔한 현대식 식당이다. 
새 건물에 50년 전통의 해물 찜의 대가(大家)란 알록달록한 새 간판이 한 눈에 쏙 들어온다.
아담한 모습이다. 
마치 최근에 신장개업한 식당이란 생각이 든다. 
‘50년 전통’‘해물찜 대가(大家)’란 간판에 이끌려 그 맛이 궁금해진다.

식당으로 들어서면서도 ‘이곳이 3대에 걸친 역사 깊은 식당이 맞는가?’라는 생각이 든다.

‘어서 오세요’하면서 중년의 여인이 미소를 지으며 맞아준다.

한일식당 주인 김인교(64) 사장이다. 
“50년 전통의 역사를 지닌 한일식당이 맞습니까?”라는 물음에 김 사장은 “요즘 손님들은 깔끔한 것을 좋아한다”며 “최근에 현대식으로 재건축했다”고 귀띔한다.

◆한일식당의 역사, 1대 이두성 할머니 
한일식당의 역사는 1대 사장 이두성 할머니의 이야기로부터 시작된다.

김인교 사장은 수십 년 전 시어머니로부터 전해 들은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놓는다.

김 사장의 시아버지이자 이두성 할머니의 남편인 이봉철씨는 1950년 6ㆍ25전쟁 당시, 이북에서 단신으로 부산으로 피난 내려와서 생활하다가 울진에 올라와 정착, 양복점을 경영했었다.
북한에서 조금 익혔던 양복 만드는 기술은 부산에서 피난생활을 하면서 양복점에 들어가 종업원으로 일하면서 본격적으로 양복기술을 익혔다. 
1952년에 울진으로 올라와 ‘한일라사’를 개업, 이곳에서 이두성 할머니를 만나 결혼도 하고 자녀들도 낳아 살면서 울진이 제2의 고향이 됐다. 

양복점 경영은 괜찮은 편이었다. 
처음엔 고생을 좀 했지만, 점차 기술이 알려지면서 단골손님이 한두 사람 늘기 시작해 생활이 점차 안정돼 갔다. 
김 사장은 “그 당시엔 양복기술자가 많이 없어서 대접을 받던 시대라 양복점 경영이 잘돼 돈도 꽤 많이 벌어 재정형편이 좋은 편이었다”고 시어머니로부터 전해 들은 이야기를 들려준다.

1970년대 들어서면서 양복도 기성복시대가 시작됐다. 
그토록 잘되던 양복점의 경영이 급속도로 나빠졌다. 
전국에 있는 양복점들이 한결같이 경영이 힘들어지면서 속속 문을 닫기 시작했다.
한일라사도 더는 버티기 어려워 결국 양복점을 폐업했다.
그 대신 부인 이두성 할머니가 생활전선에 나서게 됐다. 

이두성 할머니는 1971년 한일라사를 경영하던 그 자리에 간편한 국밥과 가정식 밥 위주의 식당을 차렸다. 
한일식당이란 이름도 한일라사에서 따온 것이다. 
그때 시작했던 한일식당이 47년 동안 줄곧 한 자리를 지켜오고 있다.

◆시어머니 돕던 새댁, 2대 김인교 사장  
이두성 할머니가 생활전선의 전면에 나서 식당을 차린 후, 새색시였던 김인교 사장도 시어머니가 경영하고 있는 식당에 나가 팔을 걷고 나섰다. 

20여 년간 시어머니와 함께 식당을 경영하면서 음식조리방법과 양념기술을 배웠다.
1987년부터 식당의 주종목을 바꿨다. 
국밥과 한식전문에서 해물전문식당으로 전환했다. 
울진을 찾아오는 관광객들이 늘면서 해물전문식당이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바닷가라 싱싱한 해물을 구하기도 쉬웠다. 
1대 사장 시어머니가 연세가 높아지면서 1990년에 며느리인 김인교 사장에게 식당경영권을 넘겨주었다. 

2대 김인교 사장이 이어받아 대를 잇게 되면서 한일식당의 역사는 계속되고 있다.

◆47년 만에 재건축 
김 사장이 경영을 맡은 후, ‘해물찜 전문 맛집’으로 소문이 나 손님들이 밀려들기 시작했다.
그래도 건물을 리모델링 하려면 한동안 식당 문을 닫아야 해 어쩔 수 없이 비좁고 불편하지만, 눈 질끈 감고 버텨왔다. 

하지만, 몇 년 전부터 전국에서 ‘맛집’을 찾아서 오는 손님들이 부쩍 늘어나면서 사정이 달라졌다.
낡고 비좁은 식당으로는 더 버텨낼 수가 없었다. 
전국에서 찾아오는 손님을 다 받을 수가 없어 되돌려보내기에 너무 마음이 아팠다.
결단을 내려야 했다. 
결국, 지난여름 한 달 동안 한일식당 재건축을 시작했다. 
건물의 안팎을 넓혀 현대식으로 산뜻하게 증ㆍ개축하면서 47년 만에 한일식당이 새 모습으로 탄생했다. 

이제 한일식당은 옛 흔적은 찾아볼 길이 없다. 
천정에는 에어컨이 달려있어 맵고 뜨거운 해물탕과 찜을 즐기는 손님을 배려하고 있다.
깨끗하고 밝은 벽지로 장식하고 화장실도 현대식으로 갖춰 손님들이 편안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했다. 

김 사장은 “옛날에는 오래된 음식점이라면 무조건 손맛으로 손님들이 찾아왔지만, 이제는 깨끗한 환경에 좋은 음식재료에다 정성과 손맛이 더해져 맛을 내는 음식점이 대세”라고 말한다.

한일식당의 역사를 볼 수 있는 게 없느냐? 는 질문에 김 사장은 “낡고 오래된 그릇과 도구들은 집수리 하면서 다 정리해 버렸다”고 한다. 
“보관할 장소도 없고…. 이제는 개방형 부엌이라 손님들이 볼 수 있어 깔끔한 것이 좋다”라고 해명한다. 

◆아귀찜 전문 맛집으로 소문 
아귀탕과 아귀찜을 잘한다는 지역이 마산이라고 하지만, 한일식당의 아귀찜 아귀탕은 울진에서도 ‘맛집’으로 소문나 있다. 
그 비결은 싱싱한 해물재료에 있다. 

10분 거리에 어판장이 있어, 매일 배들이 바다에 나가서 잡아오는 싱싱한 생선을 바로 구할 수 있다는 것이 강점이다. 

싱싱한 재료구매는 아들 이성산(40)씨 담당이다. 
매일 새벽마다 어판장에 나가 중매인에게 신선한 해물을 입찰해서 산다고 전한다.

구매해온 해산물은 깨끗하게 손질해서 신선한 김치냉장고에 보관, 바로바로 음식을 준비해서 손님상에 낸다. 

물론, 음식을 조리하는 기술과 양념의 비법들도 있다. 
김 사장이 30년 동안 익힌 노하우다. 
이 맛의 비결로 한일식당의 명성이 47년 동안 이어져 오고 있다.

김 사장은 “음식은 싱싱한 재료와 주인의 정성과 손맛이 좌우한다”며 “항상 내 자식이 먹는다는 마음으로 음식을 만들고 있다”고 말한다. 

식당을 경영하면서 재미있었던 일화도 들려준다. 

30년 전, 국밥 한 그릇에 200원 하던 시절, “훈련을 마친 예비군 손님들이 갑자기 단체로 들이닥쳐 국밥을 말아 주었는데, 모두 똑같은 얼룩무늬 예비군복을 입고 있어서, 누가 누군지 몰라서 돈을 다 받았는지? 못 받았는지도 몰랐던 일이 있었다”면서 박장대소를 한다.

“참으로 세월이 많이 흘렀지만, 그래도 그때가 정말 좋았던 것 같다”고 회상한다.

그 당시엔 사람들이 따뜻한 국밥 한 그릇을 먹으면서도 정말 행복한 모습들이었다는 것.
◆3대째 대물림 
한일식당은 늘 손님들이 북적인다. 
해물전문식당 이지만, 김 사장의 밑반찬만드는 솜씨가 손님들의 입맛을 유혹하기 때문이다.
손님들은 “이 집 사장님은 나중에 반찬가게를 해도 되겠다”고 평가한다.

김인교 사장은 “지금까지 손맛과 정성으로 음식만 만들며 살아왔다”면서 “아직도 내 손맛과 정성을 못 잊어 단골로 찾아와 주는 손님이 있어서 감사할 따름”이라고 말한다.

특히 “손님이 음식을 드신 후 ‘맛있다’‘감사하다’고 할 때가 최고의 기쁨”이라며 “죽을 때까지 한일식당의 맥을 이어갈 것”이라고 속마음을 털어놓는다. 

한일식당은 현재 함께하는 아들 이성산(40)씨에게 대물림할 계획이다.
이씨도 착실히 경영수업을 받고 있는 중이다. 
김 대표는 “평생 이 직업이 힘들긴 했지만, 이젠 아들에게 물려주기 위해 천천히 음식의 비법을 조금씩 전수하고 있다”고 밝힌다. 

원형래 기자 whr7349@idaegu.com


<저작권자ⓒ 대구·경북 대표지역언론 대구일보 .